카우벨 소리가 푸른 초원에서 쩔렁거리는 머나먼 이국, 스위스.
그곳에서 치즈 대신 빵 위에 된장을 얹어먹는 남자가 있다!!!
그의 퓨전 식단 만큼, 자신에겐 스위스와
한국의 정신적인 피가 반반씩
흐른다고 믿는 칼 뮬러(54) 씨.
그런가 하면 9명이나 되는 그의 가족들은 스위스 현지에서
모두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칼 뮬러 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취리히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그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랑도 얻어, 고정숙(45) 씨를 아내로 맞았다.
스위스 푸른 초원에서 한국의 청량한 가을 하늘을 그리워하고
알프스 통나무집에서 한옥을 꿈꾸며 사는
알프스 된장 아저씨의 아주 특별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스위스에도 한류 열풍이 일고 있다?!!
한국에서의 15년 간 생활이 천국이었다고 말하는 칼 뮬러(54) 씨. 취리히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던 그는 한국인 친구로부터 알게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첫발을 디뎠다. 그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다정한 사람들에게 매료되어 대가족 제도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런가 하면, 칼 뮬러 씨는 한국을 알기 위해 자전거로 국토 횡단을 하기도 했다. 그런 칼 뮬러 씨는 한국에서 사랑하는 아내 고정숙(45) 씨를 만나 가정을 꾸려 살다가 사업 관계로 스위스로 떠났다. 그러나 스위스에서도 한국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스위스에서 ‘코리아 뮬러’로 통하는 칼 뮬러 씨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바로 된장 찌개!! 어머니의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칼 뮬러 씨의 철학이 담긴 노력의 결과다. 게다가 큰 아들 칼리는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땄고, 축구 선수인 딸 크리스타는 한국에 축구 연수를 받으러 오기도 했다. 크리스타는 박주영 선수의 열렬한 팬이다. 그런가 하면, 막내 딸 에스더는 한국의 천사원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하고 가기도 했다는데!
#2. 칼 뮬러 씨만의 특별한 퓨전 교육법
학교에 가고 나서야 스위스 말을 배웠다는 아이들. 칼 뮬러 씨는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도록 가르쳤다. 스위스 말을 썼을 때는 눈물이 나도록 혼을 냈다는 칼 뮬러 씨. 말은 곧 문화의 통로라는 생각에서 나온 그의 교육법이다. 그의 철학은 예절 교육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의 가족은 술을 마실 때는 고개를 돌려야 하고, 어른이 식사를 마치지 않았을 때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칼 뮬러 씨는 한국의 어느 아버지보다 엄한 반면에, 아이들의 의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기도 한다.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사업을 시작한 큰 아들 칼리와 중학교를 그만 두고 형과 함께 사업을 하는 둘째 아들 마띠아스. 사업가인 칼 뮬러 씨는 이들의 뜻을 존중해 학업을 그만두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업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봐 준다.
#3. 작은 지구촌, 글로벌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칼 뮬러 씨의 가족은 자신이 낳은 네 명의 아이들과 세 명의 입양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인종이 모여 있기도 하다! 백인과 흑인, 동양인과 혼혈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백인인 칼 뮬러 씨와 한국인 아내 고정숙 씨. 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이들. 칼리, 마띠아스, 크리스타, 에스더. 형편이 어려운 손위처남의 아이들을 입양한 주리와 미주, 거기에 아프리카 앙골라 정치 망명 고아인 페피또까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국에 왔던 칼 뮬러 씨는 한국의 대가족 제도에 사랑이 있다고 믿었다. 넓은 의미의 가정에서 사랑과 행복을 찾은 칼 뮬러 씨 가족, 그곳에는 지구촌 어느 가족보다 웃음이 넘친다.
◆ 각부의 내용 ◆
1부 <2005년 10월 3일 월요일>
요들송이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스위스의 작은 시골 마을, 한 외국인이 차 안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흥얼거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한국인 아내가 그를 반긴다. 점심식사 시간, 식탁에는 빵과 야채, 그리고 된장이 놓여 있다. ‘된장이 땡긴다’면서 빵에 된장을 발라 먹는 칼 뮬러(54) 씨. 칼 뮬러 씨의 한국 사랑은 마을에서도 유명해 그는 ‘코리아 뮬러’로 통한다.
부인 고정숙 씨는 집에서 농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한다. 오이, 당근과 같은 채소에서 과일까지 농사일에서 열매를 따는 재미는 쏠쏠하다. 스위스 생활 년 째. 부부는 함께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며 생활했다. 그러나 최근 남편의 사업이 커지면서 농사일은 정숙 씨만의 몫이 되어버렸다.
다음날, 두 아들이 점심 식사를 하러 집에 들어왔다. 칼 뮬러 씨 가족은 식사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와 꼭 함께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큰 아들 칼리 (21)와 작은 아들 마띠아스(17), 두 형제는 함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은 막내 딸 에스더가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 칼 뮬러 씨는 공항으로 마중을 나간다. 에스더는 한국의 천사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에스더는 집에 오자마자 언니인 크리스타에게 선물을 준다. 선물은 다름 아닌 박주영의 모습이 담긴 신문 기사와 잡지. 축구 선수인 크리스타는 박주영 선수의 열렬한 팬이다.
에스더 귀국 후, 모처럼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한다. 저녁 메뉴로 된장 찌개가 등장하자, 온가족이 행복해 한다. 오랜만에 된장 찌개를 먹는 에스더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다음 날 아침, 에스더를 깨우러 방에 올라간 칼 뮬러 씨가 며칠 째 방을 치우지 않아 잔뜩 화가 났다!!

지난주 내내 감기에 시달렸고, 타이핑 할 컨디션도
되지 않아서 인간극장에 기웃 거리다가 발견한 프로그램.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내내, 스위스 사람인데, 완전히
대발이 아빠 같다는 생각이...
솔직히 국제결혼을 해서 두 나라의 문화나 언어를 유지
하면서 살려면 부부의 이해와 노력이 많이 있어야 한다.
특히 사는곳이 외국 이라면 아이들은 거의 외국의 언어와
문화에 동화되어 버린다.
내가 집에서 한국말만 해서, 내 영어는 정말 하나도 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점점 한국말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둘이 영어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논다.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한국말로 말을 하라고 번번히 말을
하지만, 오직 한 사람 엄마밖에 알아 듣지 못하는 말이
재미 있을리 만무...
그래서 한국인 학교도 보냈다. 그냥 한국어를 하는
아이들과 같이 뛰어 놀라고, 지난 토요일에도 나는 몸살로
자리 보존을 해서 신랑이 데리고 갔었다.
벌써 많은 한국인 아이들이 방학과 더불어 귀국을 해서
출석을 한 학생이 세라반에 달랑 세라 하나 였다고...
한국인 학교에 출석하는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주재원으로 파견이 되었거나
유학생 부모 또는 기러기 엄마를 따라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년에 두번 방학동안
거의 다 한국에 들어간다.
어제 세라 가방에서 발견한 저 그림.
아마 자기만 달랑 출석을 했고, 선생님이 너는 한국에
안 가니 하고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년에 봄에 다녀온
기억을 살려서, 봄에 갈것 이라고 대답을 했고, 그래서
그림 그리는 시간에 그린것 같다. 물론 글씨는 선생님이
점선으로 써준것을 세라가 다시 쓴 것이고....
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와
음식이고, 그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운명적으로 두 문화권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어미의
마음은 두 문화를 온전히 받아 들일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싶은데...
꼬리글 : 로또에 당첨되면 한국에도 아파트 한채 마련해서
방학때 마다 지내다 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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