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바이 대우 빌딩 -

한때 서울역 맞은편의 대우빌딩은 지방에서 막 올라온 이들에게 서울의 발전상을 알려준, 그리고 국민에겐 ‘한강의 기적’을 실감케 한 상징물이었다. 이런 대우빌딩(사진)이 다음달이면 ‘대우’의 자취를 완전히 잃게 된다. 옛 대우그룹의 계열사 중 마지막으로 입주해 있던 대우인터내셔널(종합상사)이 이사 가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음달 사무실을 인근 연세빌딩으로 옮긴다”며 “옛 대우맨들이 건물에서 다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니 허전하다”고 11일 털어놨다. 대우에 몸담았던 한 임원도 “대우빌딩은 30년 넘게 대우맨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1977년 완공됐다. 5층으로 설계됐다가 대우의 사세가 급성장하면서 25층으로 높아졌다. 연면적만 13만2560㎡. 당시 4대문 안에 더 높은 곳이 없어 청와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청와대 경호실의 지시로 청와대 쪽으로 난 창문을 모두 가리기도 했다. 옥상에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방공포 4대가 설치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기도 했다.
당시 김우중 회장에게 이 빌딩은 ‘세계경영’의 총본부였다. 대우건설의 한 임원은 “90년대 초반 대우의 전성기 때 이 건물엔 저층부에 종합상사, 중층부에는 자동차, 고층부에는 주요 계열사의 사장실·기획실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5층 회장 집무실에서 최고경영진이 모여 회의를 할 때면 대우의 힘이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대우는 외환위기의 파고에 98년 좌초한다. 빌딩 소유권은 대우건설에서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가전)·자동차판매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우의 터전을 등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빌딩 주인도 금호로 넘어갔다. 금호는 지난해 7월 국내 사무용 건물 거래가로는 역대 최고가인 9600억원에 이 빌딩을 미국 모건스탠리에 넘겼다. 건물 외벽에 대우건설과 금호아시아나의 로고가 달려 있지만 이마저도 연말이면 떨어진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모건스탠리 측이 리모델링 설계를 하고 있다”며 “내년 9월께면 특유의 짙은 갈색에서 다른 색깔로 확 바뀐 새 건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전했다.
------------------------------------------- 중앙일보에서 발췌 ----

나는 그곳에서 거의 7년을 보냈다.
한때 그곳은 엘리트들의 직장이였고, 선망의 대상의 장소 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서울과 수도권에서 도착한 통근버스가 건물 주위를 감쌌고, 1층 현관의
분주함은 그 오래전 선택받은 사람들이 누릴수 있는 특권 이기도 했다.
1층에 상업은행과, 제일 은행이 있었고,
주차장 뒤쪽으로 구내 매점이 있어서 유니폼을 입을때 신는 스타킹을 구입 했었다.
그리고 6층에 식당이 있었는데, 식사가 꽤 잘 나오는 편이라고 다를 이야기를 했다.
6층은 뒤쪽으로 힐튼 호텔과도 연결이 되었고, 대우 정원 이라고 부르던 산책로는
식사후에 산책하기 좋았다.
나는 아주 가끔 너무나 피곤하면 점심 식사후에 6층 뒷편의 남대문 교회의 수요예배에
숨어 들어가 뒷좌석에 앉아서 10-20분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후에 주는 김밥도 챙겨오고....
내가 근무했던 층수는 9층, 11층 15층이였는데, 15층에 가장 오래 있었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시작했던 사회생활...그래서 너무나 부족한 점이 많았고,
그 부족함이 내게는 많은 스트레스로 돌아와서 한때는 대우 감옥 이라고, 아침마다
창살에 갇히는 기분이 들었던 그곳..
그곳에서 보냈던 내 20대....내가 근무 했던 회사는 이제는 분사가 되어서 이름도 없어져
버렸다.
솔직히 그곳이 그립다고 말할수는 없다.
아니 많이 힘들었던 곳. 아침 7시30분 부터 거의 8시까지 근무했고, No라는 말을
할줄 몰라서, 참으로 남들보다 2배쯤 일을 했던 기억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쁜 이들은 나쁜 이들들 대로, 좋은 이들은 좋은 이들 대로
내게 인생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는 생각이...
지금도 가끔 꿈을 꾼다. 여직원 탈의실...(?)
인간성 지독했던 과장( 지금 생각해 보니, 30대 초반이였다...아이고 무서워라...)
그리고 내게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던 선배...
천년 만년 영화를 누릴것 같던 대기업....
많은 이들이 다른 이유로 이곳의 몰락을 이야기 하지만, 나는 지금도 100% 이해하지
못한다....그냥 그렇게 부르짓던 인간 경영에 실패한 것 같다는....
이 빌딩에 기억하는 것이 몇가지 더 있는데...
피자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참으로 맛있던 피자를 만들던 지하 아케이트의 피렌체
레스토랑...
80년대 중반...비디오가 처음 나오던 시절에 대우 영상 사업부에서 운영하던
비디오 가게...그곳에서 나는 홍콩 영화를 빌려다 보았다.
싹초밥과 일식 우동을 맛있게 만들던 일식집.
그리고 독신주의자 이면서 담배를 정말 멋있게 피우던 꽃가게 아줌마...입답도
좋으셨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한 기업인의 몰락(그에 대한 비판이나 평가는 지금 생각하고 싶지 않다)이
많은 이들의 추억도 같이 가져갈 것 같다...
그곳 자판기에서 참으로 많은 커피를 마셨는데...
그리고 20살 내가 참으로 많은 가슴앓이를 했었는데.....
굳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