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땅끝으로, 티베트로 홀로 여행을 떠나 열린 세상을 만나고 돌아온 박남식씨(右)와 김남희씨. 멀리 떠나가는 기차가 보는 이의 가슴까지 설레게 한다. 신동연 기자 |
홀로 길을 나선 젊은 여성의 모습도 여행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요즘 풍경이다.한비야의 ‘바람의 딸’ 신드롬일까? 구속을 거부하는 통쾌한 일탈일까? 혼자서 긴 여행을 마친 뒤 여행기를 책으로 펴낸 여성들이 최근 부쩍 많아졌다.박남식(58)씨는 지난 1999년 9월부터 8개월간 티베트와 네팔·인도를 여행한 뒤 얼마 전 『나비의 티베트 여행』(아침미디어)이란 책을 출간했다.
또 김남희(35)씨의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미래 M&B)은 지난 2001년 6~7월 해남 땅끝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걸어서 국토를 종단한 여행기. 2003년 가을에 떠난 흙길 여행기와 함께 최근 한 권의 책으로 묶여나왔다. 박씨와 김씨가 만나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눴다.
▶김남희=책 표지에 '여자 나이 쉰셋! 1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리라!'라고 적으셨더군요. 식구들이 눈에 밟혔을 텐데요?(웃음)
▶박남식=약 30년간 생활요가를 보급하고 십수년간 여성단체 활동도 하느라 지쳐 있었어요.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야겠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돈까지 모아주며 등을 떠밀더라고요. 마침 아들을 국가(군대)에 하숙시켜 뒀고 남편도 외국에 가게 돼 홀가분했죠.
▶김=전 사실 사회에 별 공헌한 것도 없지만…. 다만 여자로 살아가면서 제약을 많이 느꼈고 거기서 벗어나는 탈출구가 여행이었지요.
▶박=걸어서 종단했다니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무서웠을 텐데….
▶김=울기도 많이 울고…. 문고리도 없는 마을회관에서 양말까지 신고 맥가이버 칼과 손전등을 손에 쥐고 잠들었다가 바람소리에 벌떡 일어난 적도 있고, 어스름 저녁에 길을 잃어 119구급대가 출동한 적도 있어요(웃음) .여행을 하는 한 공포는 끌고 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여행을 통해 내 맘 속의 두려움과 불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소통하면 얼마나 기쁜데요.
▶박=나이 때문인지 두려움보다 불편할 때가 있었지요. 인도에서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가방을 들고 화장실을 가야 할지 버스에 두고 가도 될지 좀 고민했죠(웃음). 내가 상대방을 두려워할 때 상대편도 그렇게 반응한다고 생각해요.
▶김=혼자 떠났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어요. 물집이 생긴 발을 끌고 절뚝거리면 쉬었다 가라고 감자를 쪄주는 노부부, 남편을 부엌방으로 밀어내고 곁에 재워준 아주머니, 게다가 풀섶에서 튀어나오는 벌레까지.
▶박=고산병에 시달리고 먹을 것이 달라 고통스러웠지요. 해발 3500m 이상이면 국수도 잘 삶아지지 않아요. 푸르르 설끓어 넘치는 국수를 제대로 퍼지게 하기 위해 찬물을 부으며 새삼 인내심을 배우지요.
▶김=한창 아이 키우느라 씨름하는 친구들이 "너만은 자유롭게 살고 세상얘기 들려달라"며 부러움과 성원을 함께 보내줬어요.
▶박=내 여행일기를 본 뒤 감동받아 자신도 떠난다는 남녀도 몇명 있고 전업주부 친구들은 다음엔 꼭 같이 가자고 다짐까지 했지요.
▶김=밥집을 하는 언니 두명과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이렇게 편한 밥 먹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가족여행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고스란히 집안일을 갖고 간다는 거죠. 여자들이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박=경제적 여유가 생긴 것도 이유일 테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불만이 많다는 뜻도 되겠죠.
▶김=저처럼 여행하면 돈도 얼마 들지 않아요. 잡지 원고료로 충분했으니까요. 지난해 시작한 세계여행도 대중교통과 도보로만 하고 있는데 중국으로 갈 때 7만7000원짜리 배를 이용하면 1년 동안 500만원으로 버티죠.
▶박=나도 티베트 여행에서 비행기 요금을 포함해 6개월에 400만원 밖에 안 들었어요.
▶김=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을 포기하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쯤은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요.
▶박=세상은 공평해 하나를 취하려면 다른 것을 양보해야 합니다. 일상을 버리면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의 소중함을 가슴 깊게 느끼게 되지요.
정리=문경란 여성전문기자 <moonk21@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