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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학교앞 버스 정류장에서 69번 버스를 타면 혜화동이 종점 이였다. 그래서 가끔 마음에 맞는 친구랑 하교후에 69번 버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동숭동 이라는 곳을 갔다. 아마 족히 1시간이 넘는 긴 거리 였는데, 우리는 십대스러운 재잘거림과 색다른 곳으로의 이탈이라는 설레임으로 많이 즐거워 하면서 그 긴 시간을 아주 짧게 느끼며 종점에서 종점 거리의 여행을 즐겼다.
80년대 초반의 동숭동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촐했다. 마로니에 공원에 문예극장 그리고 길건너에는 바로크 음악사(확실 하지는 않다), 학전 다방, 장미빛 인생, 그리고 오감도와 소금창고(이것은 좀 뒤에 생겼고)등이 무엇인가 좀 문화적인 냄새를 풍기며 자리를 잡고 있고 그 뒤로는 서울대 병원이...
변두리에 위치한 상고생인 우리에게는 버스 회수권 말고 별로 여유돈이 없었고 현란한 이름의 경양식집을 보면서, 우리 취직해서 돈 벌면 이곳에 와서 우아하게 칼질 하자고 다짐 하곤 했다.
몇년뒤에 우리는 취직을 했고, 우리가 번돈으로 그곳에 가서 칼질을 하면서 생에 처음인 경양식이라는 것을 먹었다. 하지만 서로 각자의 생활이 바빠지면서 한달에 한번씩 꼭 연극 같이 보자던 약속은 한번도 지키지 못하고 세월이 흘렸다.
우리가 그곳을 잊고 사는 동안 우리 기억속의 장소들은 하나 둘 그곳을 떠났다. 처음으로 클래식 LP판을 샀던 레코드 가게도 없어졌고, 장미빛 인생도 문을 닫았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가게들이 요란스러운 장식을 하고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지낼때 가끔 그곳에 갔었다 영화도 보았고, 연극도 가끔 그곳에서 보았다 그곳의 밤은 레온사인으로 현란했고, 많은 인파의 물결로 걷지 조차 힘들었다..
한때 우리들의 소망의 장소이기도 했던 곳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친구일 것이라고 믿었던 그들은 이제 연락 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 가을이 올것이고 그곳에 은행잎이, 마로니에 잎이 얼마나 아름답게 낙하 하는지 나는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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