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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일기
개설일 : 2003/10/27
 

 
"보아하니 투쟁은 벌써 시작되었네!"
헤르만 헤세, 그는 과연 사춘기 취향의 작가일 뿐인가
안찬수 <transpoet@hanafos.com>
          
헤세와 다시 만난다는 것
헤르만 헤세 탄생 125주년 기념행사(Hermann Hesse 2002)가 그의 고향인 독일 칼브 시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 6월 29일 시작돼 오는 8월말까지 펼쳐지는 이번 축제에는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됐다는 소식이다. 칼브 시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예술과 문화가'라는 슬로건 아래 200개 이상의 행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함께 열리는 제11차 헤르만 헤세 국제 콜로키움에서는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을 새롭게 조명하며, 음악회에서는 <싯다르타>를 주제로 작곡된 마티아스 보니츠의 작품에서부터 미국의 록밴드 스페픈 울프의 록음악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밑에서> 등의 작품을 한 두 권쯤 읽었던, 그리하여 세계의 여느 작가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헤세. 한쪽 얼굴만을 보아왔을지 모를 헤세와 새로운 만남을 가져 본다.<편집자>


정지용이란 시인이 있다. 백석이라는 시인이 있다.
이들 시인의 작품들은 한때 읽을 수도 출판할 수도 없었던 시인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들 시인을 공개적으로 다시 읽고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은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대규모 해금 조치가 취해진 이후였다.

해금 이후, 마치 땅 속에 묻혀 있던 보물을 다시 꺼내어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들 시인의 언어가 뿜어내는 빛에 이끌렸다.

독일(서독)에서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문학이 겪어야 했던 것도 이들 해금 작가들의 경우와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 "어디에선가 어떤 사람이 조화와 인내와 우애에 대해 말하기만 하면, 그는 곧 전세계의 각 진영으로부터 적대시된다. 미국 자본주의에서부터 스탈린, 신교도 목사에서 카톨릭사제에 이르기까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무렵, 헤세는 전쟁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군국주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던 게르만 민족을 향하여 '오 친구여 그런 음조로 말하지 마오'와 같은 글을 곳곳에 발표했다. 헤세는 당시 독일이 지향하고 있었던 패권주의와 게르만 민족의 결속을 주장하는 국가주의, 혹은 심각한 국수주의의 경향과 광란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인류의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조국이 없는 놈' '자기 둥지를 더럽힌 새'와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무렵, 헤세의 문학은 나치에 의해 '탐탁치 않은 문학'으로 낙인 찍혔고 그의 작품은 출판이 금지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출간되지 못했다. 헤세는 나치의 반유태주의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문인도 나만큼 1933년 이래로 망명자와 유태인 편에 선 사람이 없다"고. 나치의 눈으로 볼 때 헤세는 '유태인 용병'처럼 보였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독일(서독)의 문예연감에서 헤세는 자주 누락되었다. 헤세가 중립국 스위스 국적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헤세는 독일인의 민족감정을 거스르는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문학연구자들은 헤세를 낭만주의의 울타리에 가두어놓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헤세에 대한 '낭만주의의 마지막 기사'라는 규정은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헤세 유고의 책임 편집자인, 주어캄프 출판사의 폴커 미헬스의 20년에 걸친 노력 끝에 헤세의 정치평론집 <양심의 정치>(Politik des Gewissens)가, 1977년 헤세 탄생 100주년에 즈음하여 출판되자 헤세를 더 이상 비정치적인 작가로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헤세의 '정치'에 대한 논의는, 1983년 메사추세츠 대학의 제14차 암헤스터 콜로키움에서 '헤르만 헤세와 그의 시대--정치적 비평적 국면'이라는 학술대회가 열린 뒤 더욱 더 가속화되었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작가에서 '문제의식을 지닌 이방인'으로

헤세 연구가인 홍순길 교수(목원대)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작품에 나타난 정치적 요소'라는 논문에서, 헤세의 문학이 '낭만주의'라는 울타리를 넘어 현실 정치와 긴밀하게 호흡했던 측면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점을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헤세의 생애와 작품에 있어서 큰 획을 긋는 하나의 사건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많은 헤세 연구학자들은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30년 전후를 가리켜 그의 작품과 생애의 위기 및 변혁 시대로 보고 있다. 그가 비록 그 자신을 가리켜 완전히 '비정치적이고 아시아적 수동성의 신봉자'라고 (말하며) 극구 부인하지만 그는 뱀이 허물을 벗듯이 다시 태어났으며 정치적 색채를 띄기 시작했으며 오히려 시대와 맞서 싸우는 것을 그의 작가적 사명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시대는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그가 시대에 항거하지 않으려고 해도 시대는 그를 더 이상 낭만주의 작가로, 내면성을 추구하는 은둔주의자로 또 내적 신비주의자로 놔두지 않았다.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면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양심과 정신을 수호하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그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작가에서 '문제의식을 가진 자로서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새롭게 태어났다."

적어도 헤세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헤세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작가에서 '문제의식을 지닌 이방인'으로 새롭게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독서대중에게 헤세의 문학은 여전히 소년 소녀의 취향에나 어울리는, 청소년기에 한번 읽어보아야 할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신학교에 진학하지만, 끝내 죽고 마는, <수레바퀴 밑에서>(1906)의 주인공 한스에게서 '입시지옥'을 겪고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동질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나, <데미안>(1919)을 읽으며,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고 한다"라는 말에 밑줄을 긋고 연약한 싱클레어가 되어 데미안을 찾고 있다는 식의, 청소년들의 독후감을 여전히 쉽게 만날 수 있다.

▲ 정원에서 나무를 손보고 있는 헤르만 헤세.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 Bernhard Zeller
분명, 헤세의 작품에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더욱 더 자기 자신의 본질에 접근해나감으로써 자아를 완성하고자 하고 또 그렇게 '개인'을 완성함으로써 오히려 개인의 틀을 벗고 사회로 나아가는 주인공들이 거듭 등장한다. 카멘친트, 싱클레어, 싯다르타, 클링조어, 하리 할러, 골트문트, 크네히트 등등. 이런 인물들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앞으로도 계속 사로잡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헤세 연구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정치적인 작가'와 흔히 통념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춘기 취향의 작가'라는 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과연 이런 차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 것인지 묻게 된다. 과연 이 땅에서 헤세의 문학은 '사춘기 취향의 작가'라는 허물을 벗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잠시 헤세의 문학을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싶다.

헤세의 문학을 수용하는 각 나라마다 또 민족마다 각기 다른 수용 환경이 있었다.
한국에서 헤세의 문학 수용은 우선 일제 시대 일본의 번역문학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회화에서 인상파 화가들에 대해 일본의 미술계가 과도하리만큼 편향된 집착을 보여주었던 것이 아직까지도 우리 한국인의 미술 이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 헤세의 문학에 대한 이해에서도 일본인들의 '취향'--헤세를 '유럽에 태어난 동양인'으로 받아들이는--이 영향을 끼친 측면이 있는 듯싶다. 그 다음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 1946년 헤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나 1962년 그가 사망했을 때 언론과 출판계가 보였던 반응이다.

이러 저런 계기를 통해서였을까. 헤세의 몇몇 작품들은 매년 청소년 추천도서 목록에 거의 빠짐 없이 등장하였다. 헤세는 지난 이삼십 년 동안 독일의 어느 작가보다도, 또 국내의 어느 작가보다도 한국에서 더 유명한 작가이자 인기 있는 작가였다.

마약을 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교본?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영미권에서 전혀 다른 맥락에서 헤세의 문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헤세의 작품이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1956)에서 "현대 문학에서는 거의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바도 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1960년대 비트족 또는 히피족들에 의해 헤세는 '성자'로 떠받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유리알 유희>(1931)를 그들이 환각체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으로 이해했다는 이야기나, <황야의 이리>(1927)를 마약을 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교본으로 삼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우리 독자들에게는 무척 낯선 이야기일 듯싶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청소년들이 열렬히 헤세에 빠져들며 '헤세 붐'을 일으켰을 때, 미국의 보수적이며 '도덕적인' 백인·남성·신교도들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헤세를 셰익스피어나 헤밍웨이, 솔제니친과 함께 '블랙 리스트'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헤세가 가장 널리 읽혔던 때는 1970년대와 1980년대였고 1990년대 이후 헤세에 대한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고 헤세 연구가들은 지적한다. 왜 그럴까. 분명, 헤세의 문학에는 폭압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을 빨아들이는 그 무엇이 있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독서욕구도 변하기 때문일까.

1990년대 이후 헤세의 문학이 우리 사회와 접점을 이루었던 부분은 '폭압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을 빨아들이는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정원 일의 즐거움>(2001년에 간행됨)처럼 자연 친화적인, 노장(老莊)적인 삶을 살았던 헤세의 면모라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녹색 사상이 헤세의 문학을 새롭게 볼 눈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사춘기 취향의 작가'라는 허물이나 헤세 연구가들이 언급하는 '정치적인 작가'의 면모, 이 모든 헤세 문학에 대한 상(像)을 허물고 진정 새로운 눈으로 헤세 문학을 만나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과연 헤세는 누구인가. 헤세의 문학은 어떤 문학인가. 헤세의 문학은 아직도 땅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일까.

헤세를 새롭게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 글을 썼지만, 두서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유리알 유희>에서 신비로운 인물인 '음악의 노대가'가 크네히트에게 해주었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진리는 분명 있지.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가르침',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오로지 그것만으로 현명하게 되는 그런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네.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만 하네. 신성(神性)은 개념과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네 속에 있어.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라네. 싸울 각오를 하게나, 요제프 크네히트, 보아하니 투쟁은 벌써 시작되었네."



200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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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 Hesse

 

1877

 

7월 2일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주(州)의 소도시 칼브 Calw에서 선 교사로 훗날 칼브 출판협회장이 된 요한네스 헤세 Johannes Hesse (1847 - 1916)와 그의 부인 마리 헤세 Marie Hesse (군데르트가(家) 출신, 1842 - 1902)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외할아버지 헤르만 군데르트 Hermann Gundert는 인도학자로 유명한 선교사였음.
남매로는 누이 아델레 (1875 - 1949), 동생 파울(1878 출생 및 사망), 게르트루트(1879 - 1880), 마리(1880 - 1953) 그리고 한스(1882 - 1935)가 있음.

1881~86

 

부모와 함께 스위스의 바젤에 거주. 아버지는 바젤 선교단에서 교사 활동을 하며 1883년에 스위스 국적을 취득함 (이전에는 러시아 국적 이었음).

1886~89

 

7월 가족이 고향 칼브로 돌아오며, 헤세는 실업학교에 입학.

1890~91

 

괴핑겐에서 라틴어학교에 다니며, 튀빙겐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뷔르템베르크 주정부장학생 시험(1891년 7월) 준비. 주정부 장학생 으로서의 헤세는 스위스 국적을 포기해야만 함으로, 1890년 11월 아 버지 요한네스는 뷔르템베르크 주의 시민권을 취득함.

1891~92

 

9월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헤세는 "시인이 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7개월 후에 신학교를 도망쳐 나옴.

1892

 

바트 볼에 있는 블름하르트 목사의 병원에서 치료(4월-5월). 6월에 짝사랑으로 인한 자살 기도. 슈테텐 정신병원에 체류하며 요양(6월- 8월).

1892~93

 

칸슈타트 김나지움[인문중고등학교]에 다님. 중등학교 자격시험을 치른 후 학업 중단. 에쓰링겐에서 서점 판매원 수업을 시작하지만 3일 후에 포기.

1894~95

 

칼브에 있는 페로 탑시계 공장에서 15개월간 견습공으로 일함.

1895~98

 

튀빙겐의 헤켄하우어 서점에서 판매원 및 서적 분류 조수로 일함. 1898년 10월에 처녀 시집 『낭만의 노래 Romantische Lieder』 발표.

1899

 

9월에 스위스 바젤로 이주하여 1901년까지 라이히 서점에서 서적분류 조수로 근무. 산문집 『한밤중 후의 한 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 출간.

1900

 

『스위스 일반신문』에 여러 가지 기사와 서평을 쓰기 시작함.

1901

 

3월부터 5월까지 첫 번째 아탈리아 여행(플로렌스, 제노바, 피사, 베 니스 등). 8월부터 1903년 봄까지 바젤의 바텐빌 고서점에서 서적 판매원으로 근무. 가을에『헤르만 라우셔의 유작과 시 Hinterlassene Schriften und Gedichte von Hermann Lauscher』 발표.

1902

 

어머니에게 헌납한 『시집 Gedichte』 발표. 그러나 출간 직전에 어 머니 사망.

1903

 

서점에서의 근무를 포기하고 두 번째로 이탈리아 여행을 함. 『페터 카멘친트』원고를 끝내고 베를린의 사무엘 피셔 출판사로 송부함.

1904

 

『페터 카멘친트 Peter Camenzind』 발표. 이 작품으로 일약 명성을 얻고 비엔나 농민상을 수상함. 바젤 출신의 마리아 베르누이 Maria Bernoulli와 결혼하여 보덴 호수 근교의 작은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주. 자유작가로 생활하며 여러 가지 신문과 잡지에 기고도 하며 협력함. 전기적인 연구서 『보카치오 Boccaccio』와 『프란츠 폰 아씨시 Franz von Assisi』 출간.

1905

 

12월에 첫 아들 브루노 Bruno 출생.

1906

 

장편 『수레바퀴 밑에서 Unterm Rad』 발표. 격주간지 『3월 M rz』 을 창간하여 1912년까지 공동 발행인으로 활동.

1907

 

단편집 『이 세상 Diesseits』 발표. 가이엔호펜에 자신의 집을 짓고 이사함.

1908

 

단편집 『이웃 사람들 Nachbarn』 발표.

1909

 

3월에 둘째 아들 하이너 Heiner 출생. 스위스의 취리히, 독일, 오스 트리아 등으로 강연 여행.

1910

 

장편 『게르트루트 Gertrud』 발표.

1911

 

7월에 셋째 아들 마르틴 Martin 출생. 시집 『도중에서Unterwegs』 발표. 9월부터 12월까지 화가 한스 슈투르첸에거와 인도 및 동남아시아 여행.

1912

 

단편집 『우회로 Umwege』 발표. 영원히 독일을 떠나 스위스의 베른 근교에 있는 세상을 떠난 친구 알베르트 벨티라는 화가의 시골집으로 이주.

1913

 

동방여행기 『인도에서 Aus Indien』 출간.

1914

 

장편소설 『로스할데 Ro halde』 출간. 전쟁이 시작되자 자원 입대하려 했으나 군복무 부적격 판정을 받음. 1915년부터 1919년까지 베른 주재 독일공사관에 설치된 "독일포로 후생사업소"에서 일하면서 전쟁포로와 억류자들에게 책을 공급하고 『독일 포로신문』을 발행함. 1917년에는 포로들을 위한 독자적 출판 사를 만들고 1919년까지 22권의 책을 출판해 냄.

1914~19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반전(反戰)적 내용의 정치기사와 논문, 경고 호소문 및 공개 서한 등을 발표.

1915

 

단편집 『길가에서 Am Weg』와 소설 『크눌프 Knulp. 크눌프 생애의 세 가지 이야기』 발표. 신작 시집 『고독자의 음악 Musik des Einsamen』, 단편집 『청 춘은 아름다워라 Sch n ist die Jugend』 출간.

1916

 

아버지 사망. 부인의 정신분열증 시작과 막내아들 마르틴의 발병으로 인해 정신적 타격을 받고, 루체른 근방의 손마트에서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 J. B. 랑 박사에게 정신의학적인 치료를 받음. 『독일 전쟁억류자 신문』과 『독일 전쟁포로를 위한 일요신문』을 창간함.

1917

 

시대 비판적 출판을 금지하라는 경고를 받고 에밀 싱클레어 Emil Sinclair라는 가명으로 신문과 잡지를 출간함.

1919

 

정치적 팜플렛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Zarathustras Wiederkehr』를 익명으로 발표했다가 다음 해에 실명으로 출간. 처자와 헤어져서 테씬주(州)의 몬타뇰라 Montagnola로 가서 1931년 까지 카무치 별장 Casa Camuzzi에 거주.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함. 장편 『데미안 Demian.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시적 이야기』를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발표. 『데미안』으로 폰타네 문학상을 수상 하게 되지만, 그 상이 초보자를 위한 것이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힌 후 상을 되돌려 줌. 단편소설집 『작은 정원 Kleiner Garten』, 『동화집 M rchen』 출간.

1919~22

 

R. 볼테레크와 공동으로 월간지 『생명의 절규 Vivos voco』를 창간 하여 발행.

1920

 

그림을 곁들인 10편의 시집『화가의 시 Gedichte des Malers』와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수필집 『혼돈 속으로의 조망 Blick ins Chaos』 출간. 3편의 단편을 모은 『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 Klingsors letzter Sommer』 그리고 수채화를 곁들인 여행 소설 『방랑 Wanderung』 발표.

1921

 

『시 선집 Ausgew hlte Gedichte』 출간. 취리히 근방의 퀴스나흐트에서 C. G. 융으로부터 정신분석을 받음. 『테씬에서 그린 수채화 11편 Elf Aquarelle aus dem Tessin』 발표.

1922

 

"인도의 시"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 『싯다르타 Siddhartha』 발표.

1923

 

『싱클레어의 메모첩 Sinclairs Notizbuch』 출간. 6월에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베르누이와 이혼. 취리히 근방의 바덴에서 요양을 시작하여, 1952년까지 매년 늦가을 이면 이곳에 와 요양 체류함.

1924

 

스위스 국적을 다시 취득함. 스위스의 여류작가 리자 벵거의 딸인 루트 벵거 Ruth Wenger (1897 - ?)와 재혼.

1925

 

소설 『요양객 Kurgast』 발표. 루트 벵거에게 바친 사랑의 동화 『픽토르의 변신 Piktors Verwandlungen』을 친필로 써서 발표. 독일의 뮌헨, 울름, 아우그스부르크, 뉘른베르크 등지로 작품낭독을 위한 여행. 이 해부터 베를린 S. 피셔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된 『헤세 전집』을 출간하기 시작함.

1926

 

여행기 『그림책 Bilderbuch』 발표. 프러시아 예술아카데미 예술분야 회원으로 선출됨. 아우스랜더 Ausl nder가(家) 출신의 여류 예술사가 니논 돌빈 Ninon Dolbin과 사귐.

1927

 

『뉘른베르크 여행 Die N rnberger Reise』과 히피들의 성서가 된 장 편소설 『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 발표. 50회 탄생을 기념하여 후고 발 Hugo Ball이 집필한 전기 『헤르만 헤세. 그의 생애와 작품 Hermann Hesse. Sein Leben und sein Werk』가 출간됨. 두 번째 부인 루트 벵거의 청에 따라 법적 이혼.

1928

 

수상집 『관찰 Betrachtungen』과 시집 『위기 Krisis. 한 편의 일기』 발표.

1929

 

신작 시집 『밤의 위안 Trost der Nacht』과 산문 『세계문학의 도서목록 Eine Bibliothek der Weltliteratur』 발표.

1930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Narzi und Goldmund』 발표. 단편집 『이 세상』의 증보판 출간. 프러시아 예술아카데미에서 탈퇴.

1931

 

체로노비츠 출신의 니논 돌빈(1895 - 1966)과 결혼. 그녀와 함께 화가 친구 한스 C. 보드머가 지어 평생토록 살게 해준 몬타뇰라의 새 집으로 이주. 『싯다르타』 『어린이의 영혼』 『클라인과 바그너』 그리고 『클링소어의 마지막 여름』을 한데 엮은 소설집 『내면으로의 길 Weg nach innen』 출간.

1932

 

『동방순례 Die Morgenlandfahrt』 발표.

1932~43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 집필.

1933

 

단편집 『작은 세계 Kleine Welt』 발표.
나치주의와 유태인 박해에 반대.

1934

 

스위스 작가협회 회원이 됨. 시 선집 『생명의 나무에서 Vom Baum des Lebens』 출간. 페터 수르캄프가 피셔 출판사와 함께 『디 노이에 룬트샤우 Die Neue Rundschau』지 인수.

1935

 

중단편집『우화집 Fabulierbuch』 발표. 동생 한스의 자살.

1936

 

전원시집 『정원에서 보낸 시간들 Stunden im Garten』 발표. 고트프리드 켈러 문학상 수상.

1937

 

『회고기 Gedenkbl tter』와 『신 시집 Neue Gedichte』 그리고 시구로 씌어진 회상기 『불구 소년 Der lahme Knabe』 발표.

1939~45

 

헤세의 작품은 독일에서 "원치 않는 문학"이 됨. 나치 관청은 그의 책을 출판하기 위한 종이를 허락지 않음. 『수레바퀴 밑에서』 『황야의 이리』 『관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세계문학의 도서목록』 등이 더 이상 독일에서 발행될 수 없게 됨. 수르캄프와의 합의 하에 단행본으로 된 『헤세 전집』을 취리히에 있는 프레츠와 바스무트 출판사에서 계속 간행키로 함.

1942

 

최초의 시 전집 『시집 Die Gedichte』이 취리히에서 출간됨.

1943

 

만년의 대작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를 2권으로 취리히 에서 출간.

1944

 

비밀경찰이 헤세 작품의 독일 출판업자 페터 수르캄프를 체포.

1945

 

시 선집 『꽃가지 Der Bl tenzweig』와 장편 프라그멘트인 『베르톨 트 Berthold』 그리고 새로운 단편과 동화를 모은 『꿈의 발자취 Traumf hrte』 출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규칙적으로 실스 마리아에서 여름을 지냄.

1946

 

1914년 이후의 전쟁과 정책에 관한 수상집 『전쟁과 평화 Krieg und Frieden』을 취리히에서 발표. 그 이후로 헤세 작품은 다시 독일의 수르캄프 출판사에서 간행될 수 있게 됨. 프랑크푸르트 시(市)의 괴테 문학상 수상. 노벨 문학상 수상.

1947

 

베른대학교의 철학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 받음. 고향인 칼브 시의 명예시민이 됨.

1950

 

브라운슈바이크 시의 빌헬름 라베 문학상 수상.

1951

 

『후기 산문집 Sp te Prosa』과 『서간 선집 Briefe』 발표.

1952

 

75회 탄생일을 기념하여 6권으로 된 『헤세 전집 Gesammelte Dichtungen』 출간. 그네프코프 Edmund Gnefkow 저 『헤르만 헤세. 전기 1952 Hermann Hesse. Biographie 1952』 출간.

1954

 

『픽토르의 변신』과 『헤르만 헤세와 로망 롤랑의 서신교환집 Briefwechsel: Hermann Hesse - Romain Rolland』 출간.

1955

 

독일 서적협회의 평화상 수상. 니논에게 헌납된 후기 산문집 『주문(呪文) Beschw rungen』 발표.

1956

 

바덴 뷔르템베르크의 독일예술 촉진위원회가 헤르만 헤세 문학상을 위한 재단을 설립함.

1957

 

80회 탄생일에 마르틴 부버가 슈투트가르트에서 "헤르만 헤세의 정신에 대한 봉사"란 축사를 함. 『헤세 전집 Gesammelte Schriften』이 7권으로 증보 출간됨.

1961

 

시 선집 『단계 Stufen』 출간.

1962

 

몬타뇰라의 명예시민이 됨. 8월 9일 뇌출혈로 몬타뇰라에서 별세. 이틀 후에 성 아본디오 묘지에 안장됨.

1962

 

바이블러 Helmut Waibler가 『헤르만 헤세. 하나의 도서목록. Hermann Hesse. Eine Bibliographie』을 출간함.

1963

 

『후기 시집 Die sp ten Gedichte』이 인젤출판사에서 출간됨.

1964

 

마르바하의 쉴러박물관에 "헤르만 헤세 문헌기록보관소"가 설치됨.

1965

 

니논 헤세가 『유작 산문집 Prosa aus dem Nachla 』을 펴냄.

1966

 

니논 헤세가 작가의 서간문과 여러 가지 생에 관한 기록에 나타난 1877년부터 1895년까지의 생애를 내용으로 하는『1900년 이전의 유년시절과 청소년시절 Kindheit und Jugend vor Neunzehnhundert』 을 펴냄. 니논 헤세 사망.

1968

 

『헤르만 헤세와 토마스 만의 서신교환집 Hermann Hesse - Thomas Mann. Briefwechsel』이 카를손 Anni Carlsson 편으로 출간됨.

1969

 

『헤르만 헤세와 페터 수르캄프의 서신교환집 Hermann Hesse - Peter Suhrkamp. Briefwechsel』이 운셀트 Siegfried Unseld 편으로 출간됨.

1970

 

미헬스 Volker Michels가 편집한 헤세의 서평과 논문들을 함께 수록한 12권으로 된 『헤세 전집 Hermann Hesse Werkausgabe』, 뤼티 Hans J rg L thi 저 『헤르만 헤세. 자연과 정신 Hermann Hesse. Natur und Geist』 출간.

1971

 

"편지로 본 두 작가의 초상"이라는 부제를 붙인 『헤르만 헤세와 헬레네 포이그트 디데리히스 Hermann Hesse - Helene Voigt-Diederichs』가 첼러 Bernhard Zeller 편으로 출간.

1972

 

미헬스 편『헤세의 "황야의 이리"에 관한 자료집 Materialien zu Hermann Hesses "Der Steppenwolf"』 출간.

1973

 

미헬스와 하이너 헤세가 공동으로 편집한『서간 전집 Gesammelte Briefe』 제1권(1895-1921) 출간. 미헬스가 편집한 유작 산문집 『무위(無爲)의 예술 Die Kunst des M iggangs』와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관한 자료집 Materialien zu Hermann Hesses "Das Glasperlenspiel"』, 『사진으로 본 헤르만 헤세의 생애와 작품 Hermann Hesse. Leben und Werk im Bild』 출간. S. 운셀트 편 『헤르만 헤세. 하나의 작품사 Hermann Hesse. Eine Werkgeschichte』 출간.

1974

 

시아 Adiran Hsia 저 『헤세와 중국 Hermann Hesse und China』, 미헬스 편 『헤세의 "싯다르타"에 관한 자료집 Materialien zu Hermann Hesses "Siddhartha"』 출간.

1977

 

미헬스 편집한 유작 산문집 『작은 기쁨 Kleine Freuden』, 1914년 부터 1962년까지의 정치에 관한 2권으로 된 평론집 『양심의 정치 Politik des Gewissens』, 『헤세와 훔의 서신교환집 Hermann Hesse - R. J. Humm. Briefwechsel』, 문학에 관한 관찰과 논문을 편집한 『책들의 세계 Die Welt der B cher』 출간. 미헬스가 여러 가지 관찰문과 이야기와 시를 엮어 편집한 『헤르만 헤세. 보덴 호수 Hermann Hesse. Bodensee』, 브루노 헤세 Bruno Hesse와 쿠티 Sandor Kuthy가 편집한 『화가로서의 헤세 Hermann Hesse als Maler』 출간. 마르바하에서 헤세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움 개최.

1978

 

『1900년 이전의 유년시절과 청소년시절』 제2권이 키르히호프 Gerhard Kirchhoff 편으로 출간됨.

1979

 

『서간 전집』 제2권(1922-1935) 출간. 미헬스 편『사진과 텍스트에 나타난 헤세의 생애 Hermann Hesse. Sein Leben in Bildern und Texten』 출간. 치올코프스키 저 『작가 헤르만 헤세 Der Schriftsteller Hermann Hesse』 출간.

1980

 

이인웅 편저 『작가론 헤르만 헤세』(문학과 지성사) 출간.

1981

 

파이퍼 Martin Pfeifer의 『헤세의 전 작품에 대한 주해 Hesse-Kommentar zu s mtlichen Werken』 출간.

1982

 

『서간 전집』 제3권(1936-1948) 출간. 프리드맨 Ralph Freedman 저 『위기의 작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Autor der Krisis』 출간.

1986

 

『서간 전집』 제4권(1949-1962) 출간.

1987

 

미헬스 편 『목격자의 보고서로 본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in Augenzeugenberichten』 출간.

1988

 

1900-1910년의 서평과 논문을 편집한 『책 속에서의 세계 Die Welt im Buch』 출간.

1990

 

『풍경 서술. 스위스의 미니어처 Beschreibung einer Landschaft. Schweizer Miniaturen』 출간.

1992

 

관찰문과 시를 엮은『정원에서 Im Garten』 출간.

1993

 

미헬스 편 『헤세의 "데미안"에 관한 자료집 Materialien zu Hermann Hesse "Demian"』 제1권, 관찰문과 시와 수채화를 엮은 『테신 Tessin』 출간. 카랄라슈빌리 Reso Karalaschwili 저 『헤르만 헤세. 성격과 세계상 Hermann Hesse - Charakter und Weltbild』 출간.

1996

 

미헬스 편『정원에 대한 기쁨 Freude am Garten』, 이탈리아에 관한 인상과 이야기를 엮은 여행기 『이탈리아 Italien』, 꿈에 얽힌 글을 가려뽑은 『꿈의 선물 Traumgeschenk』 출간.

1997

 

미헬스 편 『헤세의 "데미안"에 관한 자료집』 제2권, 가장 아름다운 수채화 선집 『색갈이 인생이다 Farbe ist Leben』 출간.

1998

 

클라이네 Giesela Kleine 저 『세상과 마술정원 사이에서. 니논과 헤르만 헤세 Zwischen Welt und Zaubergarten. Ninon und Hermann Hesse』 출간. 사랑의 시를 미헬스가 편집한 『사랑의 기적 Wunder der Liebe』 출간.

1999

 

사진과 관찰문과 시를 엮은 미헬스 편 『구름 Wolken』 출간.



   

1877
 

7월 2일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주(州)의 소도시 칼브 Calw에서 선 교사로 훗날 칼브 출판협회장이 된 요한네스 헤세 Johannes Hesse (1847 - 1916)와 그의 부인 마리 헤세 Marie Hesse (군데르트가(家) 출신, 1842 - 1902)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외할아버지 헤르만 군데르트 Hermann Gundert는 인도학자로 유명한 선교사였음.
남매로는 누이 아델레 (1875 - 1949), 동생 파울(1878 출생 및 사망), 게르트루트(1879 - 1880), 마리(1880 - 1953) 그리고 한스(1882 - 1935)가 있음.

1881~86
  부모와 함께 스위스의 바젤에 거주. 아버지는 바젤 선교단에서 교사 활동을 하며 1883년에 스위스 국적을 취득함 (이전에는 러시아 국적 이었음).
1886~89
  7월 가족이 고향 칼브로 돌아오며, 헤세는 실업학교에 입학.
1890~91
  괴핑겐에서 라틴어학교에 다니며, 튀빙겐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뷔르템베르크 주정부장학생 시험(1891년 7월) 준비. 주정부 장학생 으로서의 헤세는 스위스 국적을 포기해야만 함으로, 1890년 11월 아 버지 요한네스는 뷔르템베르크 주의 시민권을 취득함.
1891~92
  9월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헤세는 "시인이 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7개월 후에 신학교를 도망쳐 나옴.
1892
  바트 볼에 있는 블름하르트 목사의 병원에서 치료(4월-5월). 6월에 짝사랑으로 인한 자살 기도. 슈테텐 정신병원에 체류하며 요양(6월- 8월).
1892~93
  칸슈타트 김나지움[인문중고등학교]에 다님. 중등학교 자격시험을 치른 후 학업 중단. 에쓰링겐에서 서점 판매원 수업을 시작하지만 3일 후에 포기.
1894~95
  칼브에 있는 페로 탑시계 공장에서 15개월간 견습공으로 일함.
1895~98
  튀빙겐의 헤켄하우어 서점에서 판매원 및 서적 분류 조수로 일함. 1898년 10월에 처녀 시집 『낭만의 노래 Romantische Lieder』 발표.
1899
  9월에 스위스 바젤로 이주하여 1901년까지 라이히 서점에서 서적분류 조수로 근무. 산문집 『한밤중 후의 한 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 출간.
1900
  『스위스 일반신문』에 여러 가지 기사와 서평을 쓰기 시작함.
1901
  3월부터 5월까지 첫 번째 아탈리아 여행(플로렌스, 제노바, 피사, 베 니스 등). 8월부터 1903년 봄까지 바젤의 바텐빌 고서점에서 서적 판매원으로 근무. 가을에『헤르만 라우셔의 유작과 시 Hinterlassene Schriften und Gedichte von Hermann Lauscher』 발표.
1902
  어머니에게 헌납한 『시집 Gedichte』 발표. 그러나 출간 직전에 어 머니 사망.
1903
  서점에서의 근무를 포기하고 두 번째로 이탈리아 여행을 함. 『페터 카멘친트』원고를 끝내고 베를린의 사무엘 피셔 출판사로 송부함.
1904
  『페터 카멘친트 Peter Camenzind』 발표. 이 작품으로 일약 명성을 얻고 비엔나 농민상을 수상함. 바젤 출신의 마리아 베르누이 Maria Bernoulli와 결혼하여 보덴 호수 근교의 작은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주. 자유작가로 생활하며 여러 가지 신문과 잡지에 기고도 하며 협력함. 전기적인 연구서 『보카치오 Boccaccio』와 『프란츠 폰 아씨시 Franz von Assisi』 출간.
1905
  12월에 첫 아들 브루노 Bruno 출생.
1906
  장편 『수레바퀴 밑에서 Unterm Rad』 발표. 격주간지 『3월 M rz』 을 창간하여 1912년까지 공동 발행인으로 활동.
1907
  단편집 『이 세상 Diesseits』 발표. 가이엔호펜에 자신의 집을 짓고 이사함.
1908
  단편집 『이웃 사람들 Nachbarn』 발표.
1909
  3월에 둘째 아들 하이너 Heiner 출생. 스위스의 취리히, 독일, 오스 트리아 등으로 강연 여행.
1910
  장편 『게르트루트 Gertrud』 발표.
1911
  7월에 셋째 아들 마르틴 Martin 출생. 시집 『도중에서Unterwegs』 발표. 9월부터 12월까지 화가 한스 슈투르첸에거와 인도 및 동남아시아 여행.
1912
  단편집 『우회로 Umwege』 발표. 영원히 독일을 떠나 스위스의 베른 근교에 있는 세상을 떠난 친구 알베르트 벨티라는 화가의 시골집으로 이주.
1913
  동방여행기 『인도에서 Aus Indien』 출간.
1914
  장편소설 『로스할데 Ro halde』 출간. 전쟁이 시작되자 자원 입대하려 했으나 군복무 부적격 판정을 받음. 1915년부터 1919년까지 베른 주재 독일공사관에 설치된 "독일포로 후생사업소"에서 일하면서 전쟁포로와 억류자들에게 책을 공급하고 『독일 포로신문』을 발행함. 1917년에는 포로들을 위한 독자적 출판 사를 만들고 1919년까지 22권의 책을 출판해 냄.
19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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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워니네 2004.08.14  23:11

해피맘님..헤르만 헤세의 작품세계를 아주 좋아하시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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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Joecita 2004.08.15  01:43

저도 한때 헷세에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지금은... 기어다니는 아가 쫓아 다니느라 책과는 너무 거리가 먼 생활을...
생일선물로 받은 다빈치 코드... 언제나 다 읽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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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Happymum 2004.08.15  04:10

민하맘님.............저도 요즘은 신문도 못 보고 살아요
읽으려고 쌓아 놓은 책이 태산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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